2002/07/30 06:10

천상호텔을 나서며 안개비가 흩뿌리는 산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본다.

산 아래는 햇살이 강하다. 다시 어제 들어왔던 길을 따라 용정으로 가는 길.....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를 생각하며 스쳐지나 가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주유소에서 삼륜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는 사람, 약방 앞에서 과일 파는 노점상, 거리의 간판과 사람들,

넓은 옥수수 밭과 푸른 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다 보니 버스가 연길로 들어선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길이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시장에 들어가 물건도 사보고 싶은데...

2002/07/30 12:30

점심을 먹고 만경대전시관에 들른다.

중국은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여행을 할 때는 하루에 2회 지정된 곳에 들러 쇼핑을 해야 한단다.

오늘 우리가 들르는 2군데는 만경대 전시관과 백두산반달곰 지상낙원이다.

만경대전시관은 조선족이 사장이고 북한에서 온 직원들이 관리를 하고 있으며 사진은 촬영금지다.

버스 안에서 몰래 한 장 찍었다.

북한의 책 몇 권, 밥그릇, 북한화폐 등의 현 북한 현실을 짐작케 하는 물품 몇 점이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북한의 유명한 자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림인지 사람의 손으로 직접 수를 놓은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북한에서는 지폐에 김일성 사진이 있어 구기거나 접으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다음 순서는 북한에서 만든 우황청심원, 사향, 상황버섯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북경에서 관광 마지막 날까지 지겹도록 들어야 했던 약장사의 광고들...)

2002/07/30 13:30

버스가 용정으로 접어들자 해란강이 푸른 들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마음이 먹먹해져 온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는 대성중학교가 멀지 않았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난,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 볼까...?

2002/07/30 14:15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인 시비 앞에 서다.

햇살이 너무 강해 눈을 뜨고 바라보기가 힘들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너무 산만해서 느낌이 없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2층 역사전시관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조용히 계단을 내려온다.

2002/07/30 17:20

백두산 반달곰 지상낙원으로 가고 있다.

"지상낙원"이라고 하기에 반달곰들을 풀어놓은 공원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 앞에 도착해서야 이 곳이 웅담을 생산하는 공장인줄 알았다.

곰들은 더위에 지쳐 있고 배설물의 심한 악취와....

반달곰의 사육장이다.

좁은 사육장 안에서 몸부림치는 곰들..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난다. 그리고 두통...

백두산의 그 푸르고 깊은 숲 속에서 저 곰들을 뛰어 놀게 할 수는 없을까...?

누가 곰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나 자신이겠지.

속이 메스꺼워 가게를 찾았다.

가겟집 아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큰언니는 중학교 1학년이고 지금은 방학이어서 놀고 있단다.

초등학생을 부끄러워 수줍은 웃음만 띠고, 꼬맹이는 언니 뒤로 숨어 버린다.

웃음이 너무 해맑아 조금전의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가신다.

2002/07/30 18:30

연변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은 모두 끝났다.

저녁을 먹고 잠시거리에 서본다. 중국농업은행 건물사이로 노을이 걸리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많이 이국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찌할 수없이 찾아오는 낯선 풍경 속에서의 짧은 외로움....!

이 여행의 끝에서 난, 누구를 만나게 될까..?

어둠이 깊어지면 연변을 떠나겠지.